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인생 반찬이 된 필리핀의 국민 음식
필리핀 음식 하면 흔히 아도보(Adobo)를 떠올리지만, 현지인들이 진짜 “밥도둑”으로 꼽는 음식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시시그(Sisig)입니다.
철판 위에 올려진 잘게 다진 고기, 감칠맛 나는 양념, 그리고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퍼지는 고소한 향기. 숟가락을 들기 전부터 식욕을 자극하는 시시그(Sisig)는 필리핀을 대표하는 국민 요리이자, 거리 음식에서 고급 레스토랑까지 폭넓게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필리핀 여행에서 시시그(Sisig)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고 돌아온다면, 마치 서울을 여행하고 김치찌개를 못 먹은 느낌일 정도로 이 요리는 필리핀인의 일상과 정체성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역사와 발전 과정
시시그(Sisig)의 기원은 루손섬 중부에 위치한 팜팡가(Pampanga)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지역은 ‘필리핀의 미식 수도’로 불릴 만큼 요리가 발달한 곳인데요, 시시그 또한 이곳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시시그’라는 단어 자체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기록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원래는 신 과일(주로 그린망고 등)을 식초와 소금으로 절이는 전채 요리를 가리켰으나, 시간이 흐르며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화하게 됩니다.
(지금 이 요리의 모습을 보면 절대로 과일로 만들어진 전채요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현대적 의미의 시시그는 1970년대 팜팡가의 한 여성, ‘알링 루시아(Aling Lucing)’에 의해 탄생합니다. 그녀는 당시 미군 공군기지에서 나오는 돼지 머리 고기 부위를 활용해 철판에 볶아내는 레시피를 개발했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시시그의 시초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의 인기있는 음식이자 밥도둑인 부대찌개와도 개발의 경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세상 어느나라 음식이, 그것도 전통 음식이 특정한 한사람을 그 요리의 개발자로 꼽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시시그와 시시그의 개발자인 알링 루시아씨는 아주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링 루시아는 돼지 볼살, 귀, 간 등을 삶고 잘게 다져 양파, 칠리, 간장, 식초 등으로 볶은 뒤, 마지막에 계란을 톡 떨어뜨리는 조리법을 완성했고, 이 레시피는 곧 필리핀 전역을 넘어 세계 각국의 필리핀 식당으로 퍼지게 됩니다.
현대의 시시그는 재료나 형태가 더 다양해졌습니다. 닭고기 시시그(Sisig), 참치 시시그(Sisig), 두부 시시그(Sisig)까지 등장했고, 퓨전 요리로는 시시그 타코, 시시그 피자까지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버려지는 부위를 알차게 살려 만든 창의적인 음식’이라는 철학에 있습니다.
필리핀 특색 음식 시시그 (Sisig)의 효능
시시그는 감칠맛과 풍부한 식감을 자랑하는 요리이지만, 영양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단백질, 미네랄,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음식입니다.
- 고단백 식사로 근육 형성에 도움
돼지고기, 닭고기, 간 등은 단백질이 풍부해 근육 유지와 성장에 좋습니다. 특히 운동 후 회복식으로도 적합합니다. - 철분과 아연 등 미네랄 공급
간과 같은 내장은 철분과 아연이 풍부해 빈혈 예방, 면역력 강화, 피부 건강 유지에 기여합니다. - 비타민 B군 풍부
돼지고기에는 비타민 B1, B6, B12 등이 많아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 해소에 효과적입니다. - 칼로리 밀도 높아 에너지 충전용 식사로 적합
노동자나 장시간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고열량 식사입니다. - 식욕 증진
철판에서 퍼지는 향과 알싸한 양념 덕분에 입맛이 없을 때 강력한 자극제가 되어 줍니다. - 스트레스 해소에도 기여
캡사이신 성분이 포함된 칠리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 퓨전 재료와 곁들일 경우 영양 균형 개선 가능
두부, 채소, 현미 등과 함께 먹으면 지방 섭취를 줄이면서도 건강한 식사가 됩니다.
단, 고지방 부위가 주재료이기 때문에 잦은 섭취보다는 간헐적인 즐거움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입에는 좋은 밥도둑이지만 몸에는 안좋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열량의 돼지고기를 자극적인 양념으로 볶아만든 것이니 그럴만도 하겠지요.
대표적인 맛집 3곳
1. Aling Lucing’s Sisig (알링 루싱 시시그)
- 위치: Guisad St, Angeles City, Pampanga, Philippines
- 지도: Google Maps
- 소개: 시시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장소. 알링 루시아 여사가 운영하던 본점 그대로의 방식으로 시시그를 제공합니다. 고소하고 바삭하면서도 육즙 가득한 고기 식감이 살아 있으며, 지역 주민과 국내외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맛집입니다.
2. Locavore Kitchen & Drinks
- 위치: Brixton Street, Kapitolyo, Pasig City, Metro Manila
- 지도: Google Maps
- 소개: 모던한 감성의 필리핀 레스토랑으로, 시시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가 인기입니다. 특히 **”Sizzling Sinigang Sisig”**은 로컬식 감칠맛과 산미의 조화로 필리핀 미식계를 흔들어 놓은 메뉴입니다.
3. Manam Comfort Filipino
- 위치: Greenbelt 2, Makati, Metro Manila
- 지도: Google Maps
- 소개: 필리핀 전통 요리를 트렌디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시시그는 돼지고기 외에도 두부, 해산물, 채식 버전까지 선택 가능하며, 다양한 인테리어와 훌륭한 서비스로 외국인 방문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마무리하며
필리핀의 시시그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입니다. 미군 기지 인근 빈곤한 지역에서 시작된 이 철판 요리는,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필리핀 요리의 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고기를 아끼지 않고 잘게 썰어 볶아내는 이 과정 속에는 필리핀의 역사, 경제, 문화, 그리고 주방장의 손맛이 담겨 있습니다.
필리핀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꼭 ‘진짜 시시그’를 철판 위에서 만나보시길 추천합니다.
“지글지글 소리부터 다른” 그 감동, 분명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